[PLAY or MOVIE] #93. 선셋 리미티드
삶과 죽음을 둔 두 남자의 끝장 토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고통을 이해할 수 있다면 당신도 뛰어내리고 싶어질 겁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원작자로 유명한 미국 문학의 거장 코맥 매카시가 쓴 동명의 희곡을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입니다. 지하철 선셋 리미티드 열차에 몸을 던져 자살하려던 백인 교수를 우연히 흑인 전과자가 구출하여 자신의 낡은 아파트로 데려오면서 영화는 시작됩니다. 영화 내내 두 사람은 낡은 식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오직 말만으로 서로를 공격하고 방어합니다.
이름조차 등장하지 않는 백인과 흑인 두 남자는 삶의 희망과 종교적 믿음을 주장하는 자와 극단적인 허무주의와 절망을 주장하는 자로 나뉘어 불꽃 튀는 논쟁을 펼칩니다. 총성 한 번 울리지 않지만 그 어떤 전쟁 영화보다 영혼을 흔드는 묵직한 울림을 선사합니다.
📋 작품 정보
- • 원작: 희곡 <The Sunset Limited> (코맥 매카시 작)
- • 영화: <선셋 리미티드> (2011)
- • 감독: 토미 리 존스
- • 출연: 사무엘 L. 잭슨 토미 리 존스
🎭 무대와 화면의 비교 : 텍스트 자체가 스펙타클
단일 공간의 힘: 빈민가의 낡은 방
감독을 겸한 토미 리 존스는 원작 희곡이 지닌 지적인 매력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어떠한 외부 장면도 삽입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허름한 빈민가 아파트라는 하나의 공간에서 카메라는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가며 비출 뿐입니다. 커피를 마시고 낡은 빵을 나누어 먹는 일상적인 행동 뒤로 삶의 본질을 파고드는 무거운 철학적 대사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집니다.
연기의 절정: 두 거장의 앙상블
사무엘 L. 잭슨은 밑바닥 인생을 살았지만 성경을 통해 구원을 얻고 타인을 살리려는 흑인 역을 특유의 불같은 에너지로 소화합니다. 반면 토미 리 존스는 모든 지식을 가졌으나 인간 세상의 잔혹함에 지쳐 죽음만을 갈망하는 백인 교수 역을 서늘하고 건조하게 연기합니다. 뜨거운 불과 차가운 얼음 같은 두 배우의 연기 대결은 영화라는 매체가 배우의 힘만으로 얼마나 위대해질 수 있는지를 완벽하게 증명합니다.
🎬 명장면 : 백인 교수의 마지막 반론
영화 내내 흑인의 열정적인 설득에 밀리는 듯했던 백인 교수가 결말부에서 자신의 끔찍한 절망감을 쏟아내는 장면입니다. 세상의 모든 문화와 예술이 결국 인간의 피비린내 나는 폭력을 가리기 위한 포장지에 불과하다며 텅 빈 눈동자로 죽음의 당위성을 논증하는 토미 리 존스의 독백은 듣는 이의 영혼마저 얼어붙게 만듭니다. 빛을 설파하던 흑인마저 침묵하게 만드는 이 압도적인 허무주의의 외침은 깊은 충격과 함께 긴 여운을 남깁니다.
"희망과 절망이 마주 앉은 식탁. 그곳에서 승리하는 것은 논리가 아니라 인간의 끈질긴 생명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