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 or MOVIE] #136. 찌질의 역사
김풍 웹툰이 까발린 이십 대 청춘의 연애 흑역사

"우리의 첫사랑이 아름다웠다는 것은 모두 각색된 기억의 조작이다."
방송인으로도 널리 알려진 김풍 작가가 글을 쓰고 심윤수 작가가 그림을 그린 화제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작품입니다. 제목 그대로 대학교 새내기 시절 서민기라는 청년이 겪는 끔찍할 정도로 부끄럽고 이기적인 연애의 흑역사를 숨김없이 까발립니다. 처음 사귄 여자친구에게 병적으로 집착하다가 이별을 통보받고 밤새 술을 마신 뒤 전 여자친구의 집 앞을 찾아가 고성방가를 지르는 등 누구나 젊은 시절 한 번쯤 이불을 걷어차며 후회했을 법한 미성숙한 행동들이 적나라하게 펼쳐집니다.
멋지고 완벽한 백마 탄 왕자님은 단 한 명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툭하면 눈물을 흘리고 자기 연민에 빠져 허우적대는 못난 청춘들의 모습은 독자들의 분노를 유발하는 동시에 묘한 동질감을 끌어냈습니다. 이 날것 그대로의 감정들은 대학로 창작 뮤지컬 무대에 올라 엄청난 폭소와 위로를 전하는 청춘의 송가로 완벽하게 변신했습니다.
📋 작품 정보
- • 원작: 동명의 네이버 웹툰 (김풍 글 심윤수 그림)
- • 무대화: 에이콤 제작 창작 뮤지컬 (2017년 초연)
- • 음악: 델리스파이스 등 인디 밴드 명곡 활용
- • 장르: 코미디 성장 로맨스
🎭 극강의 부끄러움을 승화시킨 주크박스 무대
웹툰의 심리적 압박과 고발
웹툰은 주인공의 내면에서 소용돌이치는 열등감과 자기 합리화의 과정을 독백 칸을 통해 집요하게 파고듭니다. 주인공의 이기적인 속마음이 글씨로 낱낱이 노출될 때마다 독자들은 마치 자신의 부끄러운 일기장을 들킨 것 같은 극심한 심리적 압박과 민망함을 느끼게 됩니다. 완벽한 로맨스 공식을 철저하게 부수며 현실 연애의 밑바닥을 보여주는 탁월한 심리 묘사입니다.
뮤지컬의 해법: 밴드 음악을 통한 웃음의 승화
뮤지컬 연출진은 자칫 불쾌하게 느껴질 수 있는 주인공의 못난 행동들을 1990년대 후반을 강타했던 언니네이발관이나 델리스파이스 같은 전설적인 인디 밴드들의 명곡과 결합해 한 편의 신나는 청춘 콘서트로 탈바꿈시켰습니다. 무대 위에서 눈물 콧물을 다 빼며 구질구질하게 매달리는 배우의 코믹한 신체 연기와 추억을 자극하는 흥겨운 밴드 사운드가 어우러지며 부끄러운 흑역사는 어느새 객석 전체를 뒤흔드는 유쾌한 폭소로 완벽하게 승화됩니다.
🎬 명장면 : 술에 취한 텅 빈 고백
연인에게 매몰차게 차인 민기가 친구들과 술을 잔뜩 마신 뒤 밤거리를 헤매다 전 여자친구의 자취방 창문 아래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하이라이트 장면입니다. 기타를 메고 엉엉 울며 알량한 진심을 토해내지만 결국 이웃 주민들의 민원과 경찰의 출동으로 허무하게 끝을 맺는 이 처참한 슬랩스틱은 사랑이라는 감정이 인간을 얼마나 초라하고 유치하게 만들 수 있는지 보여주는 이 작품 최고의 코미디 명장면입니다.
"바닥까지 떨어져 본 자만이 비로소 진짜 어른의 사랑을 시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