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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처방전

[Rx. 117] 묘한 중독성 클래식 추천: 슬프지만 경쾌한 아이러니, 쇼스타코비치 '왈츠 2번'

by 아키비스트 2026. 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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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처방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 겉과 속이 다른 매혹적인 춤곡

분명히 춤곡인데 왜 슬픈 걸까요?
화려한 파티장 뒤편에서 느껴지는 공허함, 혹은 광대 분장 뒤에 숨겨진 눈물.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의 비오는 운동장 씬, <아이즈 와이드 셧>의 미스터리한 오프닝, 그리고 <올드보이>의 기묘한 분위기까지.

우리의 인생은 희극일까요, 비극일까요? 아마도 그 두 가지가 뒤섞인 '블랙 코미디'에 가까울 것입니다. 즐거워야 할 왈츠 리듬에 얹어진 구슬픈 단조의 멜로디는 그런 우리네 인생을 꼭 닮았습니다.

러시아의 억압적인 체제 속에서 살아야 했던 천재 작곡가의 냉소와 유머가 담긴 곡.
한 번 들으면 귓가에서 떠나지 않는 중독성 강한 러시아풍의 멜랑꼴리 왈츠를 처방합니다.

 

 

🎵 오늘의 처방 곡: 쇼스타코비치 - 재즈 모음곡 2번 중 '왈츠 2'

※ 원제: D. Shostakovich - Jazz Suite No. 2: VI. Waltz 2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는 스탈린 독재 치하의 소련에서 끊임없이 감시당하며 불안 속에 살았던 작곡가입니다. 그래서 그의 교향곡들은 대부분 무겁고 심각하죠. 하지만 생계를 위해, 그리고 대중을 위로하기 위해 이런 '가벼운 음악'도 작곡했습니다.

제목은 '재즈 모음곡'이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미국식 정통 재즈와는 거리가 멉니다. 오히려 서커스 음악이나 캬바레 음악에 가까운 경쾌함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 경쾌함 속에는 어딘가 모르게 서늘하고 비장한 슬픔이 숨어 있습니다.
"쿵-짝-짝" 하는 왈츠 박자에 맞춰 춤을 추고는 있지만, 그 표정은 웃고 있지 않은 가면무도회 같은 느낌이랄까요? 이 이중적인 매력이 수많은 영화감독들을 매료시켰습니다.

 

 

💡 심층 감상 포인트: 클래식 오케스트라 속 '색소폰'

이 곡이 유독 묘하게 들리는 이유는 악기 편성에 있습니다.

  • 🎷 1. 색소폰의 리드
    보통 클래식 오케스트라에는 색소폰이 잘 쓰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곡의 메인 테마는 알토 색소폰이 연주합니다. 색소폰 특유의 관능적이고 약간은 퇴폐적인 음색이 곡의 분위기를 결정짓습니다. 끈적하면서도 애상적인 소리에 집중해 보세요.
  • 🥁 2. 쿵-짝-짝의 중독성
    베이스와 스네어 드럼이 연주하는 단순한 3박자 리듬은 처음부터 끝까지 변하지 않습니다. 이 집요한 반복이 묘한 중독성을 일으키며, 마치 멈출 수 없는 운명의 수레바퀴처럼 느껴지게 합니다.
  • 🎭 3. 화려하지만 슬픈 피날레
    트롬본과 금관악기가 합세하며 웅장하게 끝나지만, 결코 '해피엔딩'처럼 들리지 않습니다. 화려한 불꽃놀이가 끝난 뒤의 씁쓸함 같은 여운을 남깁니다.

🎧 함께 들으면 좋은 처방 (Pairing Music)

하차투리안 - 가면무도회 중 '왈츠'

쇼스타코비치의 왈츠가 마음에 드셨다면, 또 다른 러시아의 명작 하차투리안의 <가면무도회(Masquerade)> 중 '왈츠'를 강력 추천합니다.

김연아 선수의 은퇴 무대 곡으로도 유명하죠. 쇼스타코비치보다 훨씬 빠르고 격정적이며, 비극적인 운명으로 치닫는 듯한 파국적인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슬픈 왈츠'의 양대 산맥이라 할 수 있습니다.

 

 

💊 마음 약사의 처방 후기

기쁘면서도 슬프고, 웃기면서도 눈물 나는 감정. 우리네 삶이 딱 그렇지 않나요?
오늘은 이 복잡미묘한 왈츠 리듬에 맞춰, 삐걱거리는 하루를 유연하게 넘겨보시길 바랍니다.

"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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