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Netflix
"I heard you paint houses." (자네가 페인트칠을 한다고 들었네.)
이 건조하고 은밀한 한 마디로 시작된 역사는 총성보다 더 긴 침묵으로 끝을 맺습니다.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아이리시맨(The Irishman)>은 단순한 갱스터 무비가 아닙니다. 이것은 로버트 드 니로, 알 파치노, 조 페시라는 전설적인 배우들의 주름진 얼굴을 빌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갱스터 장르 자체에 바치는 장엄한 장송곡이자 비문(碑文)입니다. 3시간 30분이라는 러닝타임이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이 영화가 주는 시간의 무게를 견뎌낸 관객만이 느낄 수 있는 서늘한 전율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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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전미 트럭 운송 노조 위원장 지미 호파 실종 사건을 다룬 찰스 브랜트의 논픽션 <I Heard You Paint Houses>를 원작으로 합니다. 하지만 스코세이지는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것보다, 그 사건을 관통해 온 한 남자 프랭크 시런(로버트 드 니로 분)의 기억과 후회에 집중합니다. [OTT 필름 아카이브] 두 번째 기록은 화려한 총격전 뒤에 남겨진 늙고 병든 늑대들의 쓸쓸한 뒷모습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Chapter 1. 디에이징(De-aging), 기술이 아닌 기억의 서술
개봉 전 가장 화제가 되었던 것은 70대 배우들을 30~40대로 되돌린 '디에이징' 기술이었습니다. 혹자는 이를 두고 게임 그래픽 같다는 우려를 표하기도 했지만, 영화 속에서 이 기술은 단순한 눈요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노인이 된 프랭크가 과거를 회상하는 '기억의 보정 필터'처럼 작동합니다.
젊은 시절의 프랭크는 팽팽한 피부를 가졌지만, 그의 눈빛과 움직임에는 어딘가 모를 둔탁함과 피로감이 서려 있습니다. 이는 현재의 프랭크가 과거를 완벽하게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주관적인 관점에서 재구성하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기술적 위화감마저도 늙어버린 자의 불완전한 회상 장치로 승화시킨 스코세이지의 연출력은 그가 왜 거장인지를 증명합니다.
Chapter 2. 악의 평범성, 그리고 비즈니스
<좋은 친구들>이나 <카지노>에서 보여주었던 갱스터들의 화려하고 쾌락적인 삶은 여기에 없습니다. 프랭크 시런에게 살인은 그저 '페인트칠'이라 불리는 건조한 비즈니스일 뿐입니다. 그는 역사적인 사건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그 의미를 고찰하기보다는 위에서 내려온 명령을 충실히 이행하는 부속품으로서의 삶을 살아갑니다.
조 페시가 연기한 러셀 버팔리노는 이러한 '악의 평범성'을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그는 소리를 지르거나 위협적인 제스처를 취하지 않습니다. 그저 빵을 뜯어주며 조용히 "걱정하지 마"라고 말할 뿐입니다. 하지만 그 고요함 속에 담긴 절대적인 권력과 냉혹함은 그 어떤 악당보다도 공포스럽습니다. 친구를 죽이라는 명령조차도 "어쩔 수 없는 일"로 치부하는 그들의 세계에서 의리는 생존 앞에 무력하게 무너집니다.
📸 SCENE STEALER


▲ 화려한 시절은 가고, 뼈아픈 침묵만이 남은 그들의 시간
Final. 열린 문틈으로 새어나오는 고독
영화의 후반부 30분은 갱스터 무비 역사상 가장 쓸쓸한 퇴장입니다. 화려했던 시절은 가고, 감옥과 요양원을 오가는 그들의 육체는 볼품없이 늙어갑니다. 프랭크는 가족에게 외면당하고, 자신이 지켰던 조직의 비밀조차 들어줄 사람이 없어 FBI에게조차 입을 다뭅니다. 그것은 의리가 아니라, 자신의 인생 전체를 부정당하지 않기 위한 마지막 발악처럼 보입니다.
엔딩 씬에서 프랭크는 신부에게 "문은 조금 열어두세요(Leave the door open a little bit)"라고 부탁합니다. 이는 과거 지미 호파의 습관이자, 누군가(아마도 죽음 혹은 용서)가 찾아와주길 기다리는 간절한 기다림입니다. 하지만 틈 사이로 보이는 것은 칠흑 같은 어둠뿐입니다. 스코세이지는 이 장면을 통해 폭력의 시대를 살아온 자들에게 남은 것은 영광이 아니라 뼈아픈 고독과 회한뿐임을 명징하게 보여줍니다. <아이리시맨>은 그렇게 한 시대를 닫으며, 동시에 영원히 닫히지 않을 영화적 질문을 우리에게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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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총성이 멎은 후 찾아오는 긴 침묵,
그것이 바로 지옥의 소리였다."
- Review by Edito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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