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 x 클래식] Match.35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처절한 사랑
에곤 실레 <죽음과 소녀> & 슈베르트 <현악 사중주 죽음과 소녀>
오스트리아 빈을 무대로 활동했던 두 명의 천재 예술가가 있습니다.
인간의 불안과 뒤틀린 욕망을 적나라하게 그려낸 표현주의 화가 에곤 실레.
젊은 나이에 죽음의 공포를 마주하고 가슴 시린 선율을 토해낸 작곡가 프란츠 슈베르트.
서늘한 공포와 벗어날 수 없는 슬픈 운명을 노래하는 두 걸작의 소름 돋는 평행이론 속으로 여러분을 안내합니다.

🎨 작품 정보
- • 그림: 에곤 실레 - 죽음과 소녀 (천구백십오년 작 오스트리아 벨베데레 미술관 소장)
- • 음악: 프란츠 슈베르트 - 현악 사중주 십사번 라단조 죽음과 소녀
- • 감상 지점: 피할 수 없는 이별과 죽음 앞에서 몸부림치는 인간의 연약함
1. 부서진 사랑과 앙상한 영혼 에곤 실레
일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유럽을 짙게 뒤덮고 있던 시기 에곤 실레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뼈아프고 중요한 그림을 완성합니다. 캔버스 속에는 두 남녀가 거친 천 위에서 서로를 부둥켜안고 있습니다. 여자는 남자의 품에 매달려 절대 떨어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남자의 표정은 어딘지 모르게 텅 비어 있고 두 눈의 초점마저 흐릿합니다. 사실 이 그림은 실레가 무려 사 년 동안 자신의 전속 모델이자 가장 헌신적인 연인이었던 발리 노이칠에게 이별을 고하던 참담한 순간을 담고 있습니다.
가난한 예술가였던 실레는 군 입대를 앞두고 현실적인 안정을 위해 앞집에 살던 부유한 집안의 딸 에디트와 결혼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그 이기적인 선택으로 인해 무참히 버림받게 된 발리의 슬픔과 화가 자신의 지독한 죄책감을 화폭에 고스란히 기록했습니다. 그림 속에서 여자를 감싸 안은 남자의 앙상하고 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손가락 그리고 핏기가 전혀 없는 창백한 피부는 그가 곧 생명을 앗아가는 죽음의 사신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발리는 자신을 파괴할 사신에게 필사적으로 매달려 있지만 그들의 사랑은 이미 숨을 거두고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습니다.
그림 전체를 지배하는 칙칙한 갈색과 흙빛의 색조는 죽음의 그림자를 시각적으로 묵직하게 극대화합니다. 배경에 칠해진 거칠고 메마른 붓터치는 두 사람을 둘러싼 세상이 얼마나 황량하고 자비가 없는지를 폭로합니다. 에곤 실레의 그림 속에서 인간의 육체는 언제나 비틀리고 기괴하게 왜곡되어 나타납니다. 그것은 단순한 기교가 아니라 인간 내면 깊숙한 곳에 숨겨진 불안과 공포 그리고 결코 채워지지 않는 결핍을 끄집어내기 위한 의도적인 장치입니다. 사랑을 영원토록 소유하고 싶었지만 결국 파국이라는 벼랑 끝에 서야만 했던 두 사람의 얽힌 팔다리는 캔버스 위에서 영원히 풀리지 않는 슬픈 매듭이 되었습니다.
2. 사신과 소녀가 추는 섬뜩한 이인무 프란츠 슈베르트
이보다 약 백 년 앞서 오스트리아의 위대한 작곡가 프란츠 슈베르트 역시 가혹한 운명의 벼랑 끝에 내몰려 있었습니다. 그는 치명적인 불치병에 걸려 자신의 청춘과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뼈저리게 직감했습니다. 육체적인 고통과 다가오는 죽음에 대한 극심한 공포 속에서 그는 자신의 남은 모든 에너지를 쥐어짜 내어 현악 사중주 십사번을 작곡합니다. 이 곡의 두 번째 악장은 그가 과거에 지었던 동명의 가곡 선율을 바탕으로 만들어져 죽음과 소녀라는 부제를 얻게 되었습니다.
원작 가곡의 내용을 살펴보면 죽음의 사신이 다가오자 어린 소녀가 무섭다며 제발 다가오지 말라고 비명을 지르며 저항합니다. 그러자 사신은 나는 너를 해치러 온 것이 아니라 너의 친구란다 내 품에서 평온하게 잠들거라며 소녀를 부드럽고 달콤하게 유혹합니다. 현악 사중주에서는 바이올린과 비올라 그리고 첼로가 서로 엉겨 붙으며 이 섬뜩하고도 비극적인 대화를 연주로 풀어냅니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무겁고 둔탁한 리듬은 마치 피할 수 없는 운명이 다가오는 무거운 발소리처럼 듣는 이의 심장을 조여옵니다.
슈베르트의 이 음악은 처음부터 끝까지 어둡고 처절한 단조의 분위기를 유지합니다. 네 대의 현악기가 동시에 같은 리듬을 격렬하게 긁어내리듯 연주할 때는 심장이 멎을 듯한 엄청난 위압감을 선사합니다. 병마와 싸우던 슈베르트는 생명이 속절없이 소멸해 가는 것에 대해 맹렬하게 분노하다가도 어느 순간 모든 것을 체념한 듯 한없이 우울하고 서정적인 멜로디를 노래합니다. 다가오는 절망 앞에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의 소용돌이가 이 곡 하나에 낱낱이 응축되어 있습니다. 음악이 절정을 향해 고조될수록 우리는 그 거부할 수 없는 어둠의 유혹 속으로 깊숙이 빠져들게 됩니다.
3. 도슨트의 감상 가이드 함께 보고 듣기
🎧 작품 감상 단계
첫 번째 슈베르트의 현악 사중주 십사번 죽음과 소녀 중 이악장 안단테 콘 모토를 조용히 재생합니다.
두 번째 첼로와 비올라가 만들어내는 어둡고 비장한 장송곡 풍의 도입부를 들으며 그림 속 에곤 실레의 커다랗고 텅 빈 눈동자를 정면으로 응시합니다. 헌신적인 연인을 매몰차게 떠나보내야 하는 끔찍한 죄책감과 죽음보다 더한 이별의 고통이 무거운 저음의 현악기 소리와 함께 가슴을 짓누르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세 번째 바이올린이 가늘고 애처로운 멜로디를 부르짖으며 변주를 시작할 때 사신에게 필사적으로 매달려 있는 발리의 가녀린 팔과 창백하게 질린 뺨을 자세히 바라봅니다. 차갑게 식어버린 남자의 품에서 기필코 마지막 온기를 찾으려는 소녀의 비극적인 몸부림이 슈베르트의 슬픈 선율 위에서 영원히 끝나지 않는 춤을 추고 있음을 온몸으로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 [명화 x 클래식] 시리즈
눈으로 보는 명화의 감동과 귀로 듣는 클래식의 전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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