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 x 클래식] Match.42 돌이킬 수 없는 후회와 꺼져가는 심장 박동
일리야 레핀 <이반 뇌제와 그의 아들> & 차이콥스키 <비창 교향곡>
순간의 분노를 참지 못하고 하나뿐인 핏줄을 내리친 아버지의 절규.
인간 내면의 가장 참혹한 광기와 후회를 극사실적으로 묘사한 러시아 사실주의의 거장 일리야 레핀.
자신의 닥쳐올 죽음을 예감하며 인생의 모든 슬픔을 음표에 갈아 넣은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
가슴을 찢어놓는 거대한 비극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는 영혼의 통곡 소리를 듣습니다.

🎨 작품 정보
- • 그림: 일리야 레핀 - 천오백팔십일년 십일월 십육일 이반 뇌제와 그의 아들 (1885년 작 러시아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소장)
- • 음악: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 - 교향곡 6번 나단조 작품번호 74 비창
- • 감상 지점: 광기가 휩쓸고 간 자리에 남은 처절한 슬픔과 숨 막히는 심리 묘사
1. 핏빛 양탄자 위에 쏟아진 참회의 눈물 일리야 레핀
러시아 역사상 가장 잔혹한 폭군으로 불렸던 이반 사세는 어느 날 임신한 며느리의 옷차림을 트집 잡아 심하게 구타했고 이를 말리던 사랑하는 황태자 이반마저 쇠지팡이로 내리쳐 죽게 만들었습니다. 이 충격적인 역사적 사건을 주제로 한 레핀의 그림은 캔버스 전체를 피로 물들인 듯 붉은색의 카펫과 방석이 낭자하게 깔려 있어 섬뜩한 공포를 자아냅니다.
그림의 중앙에는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아들을 부둥켜안고 있는 늙은 폭군의 모습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한 손으로 아들의 머리에서 솟구치는 피를 막으려 안간힘을 쓰고 다른 한 손으로는 핏기 없는 아들의 허리를 힘껏 끌어안았습니다. 이반 뇌제의 튀어나올 듯 부릅뜬 두 눈에는 한 나라를 호령하던 황제의 위엄은 온데간데없고 자신이 저지른 끔찍한 짓을 깨달은 늙은 아비의 처절한 절망과 미칠 듯한 후회만이 가득 차 있습니다. 반면 죽음을 맞이하는 아들의 얼굴은 분노보다는 아버지를 용서하는 듯 평온하고 오히려 뺨에는 가느다란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리고 있어 비극성을 더욱 날카롭게 부각합니다. 이 그림은 인간의 심연에 숨겨진 가장 끔찍한 폭력성과 그것이 초래하는 파국을 완벽한 심리 묘사로 증명해 냅니다.
2. 심연으로 가라앉는 죽음의 선율 차이콥스키
러시아가 낳은 위대한 선율의 마술사 차이콥스키는 자신의 마지막 교향곡인 비창을 지휘하고 단 구 일 만에 원인 모를 이유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이 교향곡을 작곡가 자신이 스스로에게 바치는 눈물의 백조의 노래라고 부릅니다. 이 곡은 일반적인 교향곡들이 마지막 악장에서 승리와 환희를 힘차게 노래하는 것과 달리 클래식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무겁고 고통스럽게 절망 속으로 가라앉으며 끝을 맺습니다.
마지막 사악장이 시작되면 현악기들이 십자가 모양으로 교차하며 비통하게 울부짖는 선율을 연주합니다. 그것은 마치 감당할 수 없는 깊은 슬픔에 빠진 사람이 가슴을 치며 목놓아 우는 짐승의 울음소리처럼 들립니다. 처절하게 고조되던 음악은 중반부를 지나며 차갑게 식어가고 콘트라베이스가 둥둥거리며 아주 느리게 뛰는 심장 박동 소리를 묘사합니다. 그리고 결국 그 미세한 심장 소리마저 점차 잦아들다가 칠흑 같은 침묵 속으로 완전히 꺼져버립니다. 모든 생명이 소멸하고 완전한 어둠만이 남는 이 압도적인 허무함은 레핀이 그려낸 파국 이후의 끔찍한 고요함과 영혼의 바닥에서 조우하게 됩니다.
3. 도슨트의 감상 가이드 함께 보고 듣기
🎧 작품 감상 단계
첫 번째 차이콥스키의 비창 교향곡 사악장 비통하게 그리고 매우 느리게를 깊은 밤 조용히 재생합니다.
두 번째 현악기들이 바닥을 긁어내리듯 비탄에 젖은 선율을 쏟아낼 때 아들의 머리를 감싸 쥔 이반 뇌제의 커다랗게 부릅뜬 두 눈을 마주 봅니다. 모든 것을 되돌리고 싶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절망의 수렁에 빠져버린 인간의 파괴된 영혼이 처절한 멜로디를 타고 뼛속까지 파고듭니다.
세 번째 음악의 끝자락 저음 현악기가 죽어가는 심장의 박동처럼 무겁고 희미하게 숨을 헐떡일 때 바닥에 뒹구는 피 묻은 쇠지팡이와 핏기가 가신 아들의 창백한 손등을 응시합니다. 차이콥스키의 마지막 음표가 어둠 속으로 완전히 사라질 때 명화 속에 영원히 갇혀버린 비극적인 숨결이 현실의 무거운 침묵 속으로 서서히 스며드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 [명화 x 클래식] 시리즈
눈으로 보는 명화의 감동과 귀로 듣는 클래식의 전율.
[명화 x 클래식] 시리즈를 아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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