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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mething X 클래식

[명화 x 클래식] Match.10 고야 '옷을 벗은 마하' x 그라나도스 고예스카스: 스페인의 매혹과 열정

by 아키비스트 2026. 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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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 x 클래식] 스페인의 도발적인 눈빛,
고야 <옷을 벗은 마하> & 그라나도스 <고예스카스>

18세기 말, 가톨릭 신앙이 지배하던 보수적인 스페인 사회.
신화 속 여신이 아닌, 실존하는 여인의 적나라한 나체를 그려
종교재판까지 회부되었던 문제적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
그리고 그 그림 속 여인의 눈빛에 매료되어
스페인의 영혼을 피아노 건반 위에 옮긴 작곡가 엔리케 그라나도스.
치명적인 유혹과 비극적인 운명을 담은 스페인 예술의 정수를 만납니다.

 


🎨 작품 정보

  • • 그림: 프란시스코 고야 - 옷을 벗은 마하 (1797-1800년경 작, 프라도 미술관 소장)
  • • 음악: 엔리케 그라나도스 - 피아노 모음곡 <고예스카스> 중 '비탄, 또는 처녀와 나이팅게일'
  • • 키워드: #마히스모(Majismo) #스캔들 #낭만주의 #스페인국민악파

1. 금기를 깬 도발적인 시선: 고야의 마하

스페인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에서 가장 많은 관람객이 몰리는 곳 중 하나는 바로 고야의 '마하' 연작 앞입니다. 이곳에는 포즈와 구도가 완벽하게 똑같은 두 점의 그림, <옷을 입은 마하>와 <옷을 벗은 마하>가 나란히 전시되어 있습니다. '마하(Maja)'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당시 마드리드 빈민가 출신이지만 귀족적인 취향과 당당한 태도를 지닌 멋쟁이 여성을 지칭하는 단어였습니다.

이 그림이 미술사적으로 충격적이었던 이유는 명확합니다. 르네상스 이후 서양 미술에서 '누드화'는 비너스나 다이애나 같은 신화 속 여신들을 그릴 때만 허용되는 성역이었습니다. 하지만 고야는 그 금기를 보란 듯이 깨뜨렸습니다. 그림 속 여인은 여신이 아닌, 피와 살이 있는 현실의 여성입니다. 그녀는 수줍게 몸을 가리거나 시선을 피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두 손을 머리 뒤로 깍지 낀 채 가슴을 활짝 펴고, 관람객의 눈을 똑바로 응시합니다. 이 도발적이고 관능적인 시선은 당시의 위선적인 도덕관념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습니다.

모델의 정체는 여전히 스페인 예술계의 최대 미스터리입니다. 고야와 염문설이 있었던 당대 최고의 미녀 알바 공작부인이라는 설이 가장 유명하지만, 당시 재상이었던 고도이의 정부 페피타 투도라는 설도 유력합니다. 실제로 이 그림은 고도이의 비밀 방에 걸려 있었고, 방문객의 취향에 따라 도르래 장치를 이용해 옷을 입은 그림과 벗은 그림을 교체해서 보여주었다고 합니다. 결국 고야는 이 그림 때문에 종교재판소에 소환되어 심문을 받는 고초를 겪어야 했지만, 결과적으로 스페인 근대 회화의 문을 여는 선구자가 되었습니다.

 


2. 화폭에서 건반으로 옮겨진 영혼: 그라나도스

고야가 세상을 떠나고 약 100년 뒤, 또 한 명의 천재 예술가가 프라도 미술관을 찾습니다. 바로 스페인의 작곡가 엔리케 그라나도스입니다. 그는 고야의 그림들, 특히 마하들의 생기 넘치는 모습과 마드리드의 풍속을 그린 태피스트리 밑그림들을 보고 완전히 매료되었습니다. 그는 "나는 고야의 심리에 반했다. 그의 팔레트와 그와 마주했던 여인들에게 사랑을 느낀다"라고 고백하며, 이 감동을 음악으로 번역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렇게 탄생한 걸작이 피아노 모음곡 <고예스카스(Goyescas)>, 즉 '고야풍의 곡들'입니다. 그중에서도 제4곡 '비탄, 또는 처녀와 나이팅게일'은 가장 아름답고 서정적인 곡으로 손꼽힙니다. 달빛이 흐르는 밤, 창가에 기대어 사랑하는 이를 그리워하며 노래하는 마하의모습을 묘사했습니다. 스페인 민요 특유의 장식음이 섞인 멜로디는 애절하면서도 관능적이며, 후반부에 들려오는 나이팅게일의 울음소리를 흉내 낸 트릴(Trill)은 몽환적인 슬픔을 극대화합니다.

이 곡은 대성공을 거두었고, 그라나도스는 오페라 초연을 위해 미국 백악관에 초청받는 영광을 누립니다. 하지만 귀국하던 길, 그가 탄 배가 제1차 세계대전 중 독일 잠수함의 어뢰 공격을 받아 침몰하고 맙니다. 물에 빠진 아내를 구하기 위해 바다로 뛰어든 그라나도스는 결국 아내와 함께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고야의 그림처럼 정열적이었고, 그가 작곡한 곡처럼 슬픈 결말이었습니다.

3. 도슨트의 감상 가이드: 함께 보고 듣기

🎧 감상 포인트

Step 1. 그라나도스의 '고예스카스' 중 4번곡 '처녀와 나이팅게일'을 재생하세요. (유튜브 검색: Granados The Maiden and the Nightingale)

Step 2. 곡 초반의 느리고 우수 어린 선율이 흐를 때, <옷을 벗은 마하>의 '눈동자'를 깊이 응시하세요. 겉으로는 당당하고 도발적으로 보이지만, 그 이면에 숨겨진 사랑에 대한 갈망과 고독함이 음악과 공명하며 새롭게 다가옵니다.

Step 3. 곡의 마지막 부분, 피아노가 고음역에서 새소리처럼 빠르게 떨리는(트릴) 구간에 집중하세요. 마치 그림 속 여인의 영혼이 나이팅게일이 되어 밤하늘로 날아가는 듯한 환상적인 공감각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스페인의 밤, 그 뜨겁고도 서늘한 공기를 느껴보세요.

 


🖼️ [명화 x 클래식] 시리즈


눈으로 보는 명화의 감동과 귀로 듣는 클래식의 전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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