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 x 클래식] Match.48 대지를 향한 경건한 노동과 고향을 그리는 향수
장 프랑수아 밀레 <이삭 줍는 여인들> & 안토닌 드보르작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 2악장>
수확이 모두 끝난 텅 빈 황금빛 들판에서 바닥에 떨어진 낱알을 줍기 위해 허리를 굽힌 농부들.
가장 고단하고 흙내 나는 노동의 순간을 종교적인 경건함으로 승화시킨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
머나먼 타국 땅에서 고향의 흙냄새를 몹시도 그리워하며 슬프고도 아름다운 선율을 빚어낸 안토닌 드보르작.
대지에 깊게 뿌리내린 숭고한 인간의 삶과 잊을 수 없는 아련한 향수를 자극하는 가슴 따뜻한 걸작의 만남입니다.

🎨 작품 정보
- • 그림: 장 프랑수아 밀레 - 이삭 줍는 여인들 (천팔백오십칠년 작 프랑스 오르세 미술관 소장)
- • 음악: 안토닌 드보르작 - 교향곡 구번 마단조 작품번호 95 신세계로부터 이악장 라르고
- • 감상 지점: 시각을 자극하는 따뜻한 흙냄새와 청각을 파고드는 애절하고 짙은 향수
1. 흙과 땀이 빚어낸 거룩한 성화 장 프랑수아 밀레
십구 세기 프랑스 사실주의 회화를 이끌었던 바르비종파의 대표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는 평생에 걸쳐 농촌의 가난한 일상과 흙냄새 나는 농부들의 묵묵한 노동을 화폭에 담아냈습니다 그의 수많은 걸작 중에서도 이삭 줍는 여인들은 자연에 기대어 아주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인간의 가장 숭고한 모습을 눈부시게 보여줍니다 그림의 배경은 지주들의 거대한 수확이 이미 모두 끝나버린 늦은 오후의 텅 빈 들판입니다 화면의 저 멀리 배경에는 수확한 밀초들이 산더미처럼 풍요롭게 쌓여 있고 말을 탄 관리인이 그 넉넉함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림의 전경을 꽉 채우고 있는 세 명의 농촌 여인들은 그 풍요로움과는 전혀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들은 지주들이 수확하고 미처 거두지 못해 바닥에 흩어진 아주 작은 이삭 부스러기들을 줍기 위해 무거운 허리를 직각으로 깊숙이 굽히고 있습니다 당시 이삭 줍기는 마을에서 가장 가난하고 불우한 사람들에게만 간신히 허락된 몹시 고되고 슬픈 생존의 노동이었습니다 하지만 밀레의 그림 속에서 이 여인들의 모습은 결코 처량하거나 비참해 보이지 않습니다
여인들이 입고 있는 붉은색 푸른색 그리고 노란색의 옷은 낡고 바랬지만 묘하게도 르네상스 시대 성화 속 성모 마리아의 성스러운 옷차림을 떠올리게 합니다 땅에 굳건하게 발을 딛고 조용히 대지의 부스러기를 거두어들이는 그녀들의 견고한 실루엣은 고대의 장엄한 조각상처럼 무거운 위엄과 진실한 생명력을 뿜어냅니다 따뜻한 황금빛 저녁 햇살이 고단한 여인들의 굽은 등과 거친 손마디를 부드럽게 감싸 안을 때 가난한 자들의 땀방울은 세상의 어떤 눈부신 다이아몬드보다 더 값지고 거룩한 영혼의 보석으로 캔버스 위에서 영원토록 빛을 발합니다
2. 이방인의 눈물로 써 내려간 짙은 고향의 향수 안토닌 드보르작
보헤미아 출신의 체코 작곡가 안토닌 드보르작은 미국 뉴욕 음악원의 원장으로 초빙되어 태어나서 처음으로 낯설고 광활한 신대륙의 땅을 밟았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흑인들의 애달픈 영가와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전통 음악을 접하고 큰 감명을 받아 교향곡 구번 신세계로부터를 작곡했습니다 이 교향곡은 새로운 세계가 주는 거대한 역동성과 웅장함을 담고 있지만 이악장 라르고만큼은 머나먼 타국 땅에서 고향 보헤미아의 푸른 들판을 사무치게 그리워하던 이방인의 지독한 슬픔과 향수를 아주 절절하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곡의 서두를 여는 금관악기의 무겁고 장엄한 화음이 지나가고 나면 오케스트라의 모든 악기가 일제히 숨을 죽이고 오직 잉글리시 호른이라는 목관악기가 아주 느리고 애수 어린 독주 선율을 길게 뽑아냅니다 일반적인 오보에보다 한층 더 굵고 깊은 음색을 지닌 잉글리시 호른의 소리는 마치 해 질 녘 시골 마을에서 은은하게 피어오르는 저녁 짓는 연기와 흙냄새를 청각으로 고스란히 옮겨놓은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이 서정적이고 구슬픈 멜로디는 나중에 꿈속의 고향이라는 제목의 노래로 가사가 붙여져 전 세계 사람들의 눈시울을 붉히는 명곡이 되기도 했습니다 화려하고 웅장한 아메리카 대륙의 한복판에 서 있었지만 드보르작의 영혼은 언제나 자신이 나고 자란 가난하지만 따뜻했던 조국의 소박한 농촌 마을을 향해 있었습니다 고향의 흙과 사람들을 향한 그의 간절하고 진실한 그리움은 꾸밈없는 잉글리시 호른의 울림을 타고 시공간을 넘어 모든 인류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한 향수와 노동의 경건함을 깨워냅니다
3. 도슨트의 감상 가이드 함께 보고 듣기
🎧 작품 감상 단계
첫 번째 안토닌 드보르작의 교향곡 구번 이악장 라르고를 틀고 잉글리시 호른의 구슬픈 독주가 시작될 때까지 차분하게 기다립니다
두 번째 애수를 띤 목관악기의 깊은 선율이 허공으로 아련하게 번지기 시작할 때 캔버스의 하단부를 가득 채운 황금빛 흙바닥과 거친 밀짚의 질감을 눈으로 가만히 쓸어봅니다 드보르작의 음악이 자아내는 짙은 고향의 향수와 밀레가 묘사한 대지의 따뜻한 흙냄새가 시각과 청각을 동시에 자극하며 가슴을 뭉클하게 만듭니다
세 번째 음악이 중간 부분에서 잠시 벅차오르듯 현악기들과 화음을 맞추며 감정을 끌어올릴 때 허리를 깊숙이 굽힌 채 묵묵히 낱알을 줍고 있는 세 여인의 둥글고 단단한 어깨선을 주목합니다 아무리 삶이 고단하고 무거울지라도 대지에 기대어 정직한 땀방울을 흘리는 인간의 숭고한 생명력이 클래식 선율의 위로와 어우러져 가장 위대한 기도로 승화되는 벅찬 감동을 맛볼 수 있습니다
🖼️ [명화 x 클래식] 시리즈
눈으로 보는 명화의 감동과 귀로 듣는 클래식의 전율.
[명화 x 클래식] 시리즈를 아껴주셔서 감사합니다.
블로그 내의 다른 예술 이야기들도 함께 감상해 보세요.
여러분의 구독과 공감은 에디터에게 큰 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