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 x 클래식] Match.50 아득한 들판에 남겨진 고독과 내면의 투쟁
앤드루 와이어스 <크리스티나의 세계> & 사무엘 바버 <현을 위한 아다지오>
메마르고 광활한 풀밭 한가운데 주저앉아 멀리 떨어진 언덕 위의 집을 응시하는 뒷모습.
육체적인 장애를 극복하려는 인간의 강인한 의지를 아주 섬세하게 묘사한 앤드루 와이어스.
듣는 이의 영혼을 바닥까지 무너뜨렸다가 이내 숭고한 위로를 건네는 사무엘 바버.
가장 고립된 순간에 피어나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희망의 선율을 조용히 음미해 봅니다.

🎨 작품 정보
- • 그림: 앤드루 와이어스 - 크리스티나의 세계 (천구백사십팔년 작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 소장)
- • 음악: 사무엘 바버 - 현을 위한 아다지오 작품번호 11
- • 감상 지점: 광활한 대지의 쓸쓸한 풍경과 가슴을 후벼 파는 느리고 깊은 현악기의 흐름
1. 절망을 딛고 기어가는 강인한 영혼 앤드루 와이어스
미국의 사실주의 화가 앤드루 와이어스의 대표작 크리스티나의 세계는 얼핏 보면 한가로운 시골 풍경을 그린 평화로운 그림처럼 보입니다 광활하고 누런 풀밭 위에 연분홍색 드레스를 입은 젊은 여인이 앉아 저 멀리 언덕 언저리에 있는 낡은 농가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여인의 자세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언가 어색하고 위태로운 긴장감이 느껴집니다 여인의 두 팔은 지나치게 마르고 앙상하며 땅을 짚고 있는 손가락에는 흙먼지가 잔뜩 묻어 있습니다 사실 그림 속 모델인 크리스티나는 소아마비로 인해 하반신이 마비되어 평생 두 다리로 걸을 수 없는 가혹한 운명을 짊어진 화가의 실제 이웃이었습니다
와이어스는 휠체어나 타인의 도움을 단호하게 거부하고 오직 자신의 두 팔에 의지해 척박한 들판을 기어서 이동하는 크리스티나의 뒷모습에서 말로 다 할 수 없는 엄청난 경외감과 존경심을 느꼈습니다 그림 속에서 여인과 집 사이의 거리는 비현실적으로 멀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육체적인 장애가 가져다주는 심리적인 단절감과 막막함을 시각적으로 강조한 것입니다 하지만 여인은 결코 고개를 숙이거나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유일한 안식처인 저 먼 언덕 위의 집을 향해 시선을 똑바로 고정하고 있습니다 건조하고 메마른 붓 터치로 표현된 거친 풀밭은 그녀가 감내해야 할 인생의 혹독한 시련을 상징하지만 동시에 그녀의 내면에 숨겨진 단단하고 굽히지 않는 강인한 의지를 눈부시게 증명합니다
2. 텅 빈 가슴을 쓰다듬는 거룩한 슬픔 사무엘 바버
육체의 한계 속에서 고독하게 투쟁하는 크리스티나의 뒷모습을 보며 우리가 들어야 할 가장 완벽한 음악은 미국 작곡가 사무엘 바버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입니다 이 곡은 세계적으로 큰 슬픔이나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을 때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남은 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가장 많이 연주되는 현대 클래식의 영원한 진혼곡입니다 오직 현악기만으로 구성된 오케스트라가 빚어내는 이 느리고 무거운 선율은 듣는 이의 마음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던 모든 슬픔의 찌꺼기들을 조심스럽게 건져 올립니다
곡이 시작되면 바이올린 한 대가 아주 길고 애절한 호흡으로 서서히 상승하는 멜로디를 노래합니다 텅 빈 우주를 홀로 떠도는 듯한 이 지독한 고독의 소리는 이내 비올라와 첼로 그리고 콘트라베이스의 풍성한 화음과 만나며 점차 거대하고 웅장한 슬픔의 파도로 몸집을 불려 나갑니다 특정한 박자나 리듬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이 느릿한 흐름은 마치 무거운 현실의 짐을 끌고 척박한 땅을 한 걸음씩 기어가는 그림 속 여인의 고단한 움직임을 청각적으로 완벽하게 묘사하는 듯합니다 곡의 후반부에서 모든 악기가 가장 높은 음역에 도달하며 찢어질 듯 날카로운 비명을 토해내고 이내 기나긴 침묵 속으로 완전히 잦아드는 순간 우리는 언어를 초월한 깊은 상실감과 동시에 영혼이 정화되는 눈부신 거룩함을 온몸으로 느끼게 됩니다
3. 도슨트의 감상 가이드 함께 보고 듣기
🎧 작품 감상 단계
첫 번째 사무엘 바버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를 눈을 감고 아주 차분하고 경건한 마음가짐으로 재생합니다
두 번째 애절하게 상승하는 바이올린의 도입부가 흐를 때 캔버스의 하단에 그려진 앙상한 두 팔과 땅을 짚고 있는 여인의 굳은 손마디를 가만히 내려다봅니다 견딜 수 없는 삶의 고독과 막막한 현실의 무게가 현악기의 팽팽한 울림과 하나가 되어 가슴속에 뜨거운 먹먹함을 차오르게 만듭니다
세 번째 음악이 점차 거대해지며 심장을 조여오는 비극적인 절정에 이르렀을 때 그림의 저 멀리 아득하게 펼쳐진 지평선과 언덕 위의 집을 향해 시선을 던집니다 어떠한 시련 속에서도 결코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개척하려는 인간의 위대하고 숭고한 의지가 슬프도록 아름다운 클래식 선율에 안겨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깊은 여운을 선물할 것입니다
🖼️ [명화 x 클래식] 시리즈
눈으로 보는 명화의 감동과 귀로 듣는 클래식의 전율.
[명화 x 클래식] 시리즈를 아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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